천안 호수공원의 충격, 다음 피해자는 천안시민들?
최병성리포트] 되레 환경 파괴하는 생태공원, 그리고 난개발
▲ 물은 썩고 죽은 물고기가 둥둥 떠 있는 저수지에서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했다. ⓒ 최병성
짙은 녹색 물에 죽은 물고기들이 둥둥 떠 있다. 썩은 호수다. 이곳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노랑부리저어새가 커다란 주걱처럼 생긴 부리를 휘이휘이 저어가며 먹이를 찾고 있었다.
노랑부리저어새는 한국에 300여 마리 정도만 찾아오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이자 천연기념물 제 2005-2호로 지정된 희귀 철새다. 국제적으로도 국가적색목록 취약의 멸종위기 동물로 등재돼 있다.
▲ 마치 연출이라도 한듯, 노랑부리저어새와 왜가리와 고라니와 청둥오리가 내 앞에 나타났다. ⓒ 최병성
노랑부리저어새 뒤편에서는 왜가리와 고라니가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쉽게 만날 수 없는 풍경이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알록달록 고운 옷을 입은 천연기념물 제327호 원앙들과 독특한 머리 깃을 지닌 뿔논병아리들도 눈에 띄었다.
▲ 뿔논병아리의 사랑스런 구애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 최병성
뿐만 아니다. 이곳엔 멸종위기종인 금개구리와 맹꽁이도 함께 살고 있다. 물은 썩고 죽은 물고기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지만, 놀랍게도 이 저수지는 희귀 생명들이 살고 있는 생명의 보고였다.
이곳은 천안시에 있는 업성저수지다. 해변가나 커다란 습지가 아니라 도심 속의 작은 저수지에서 국제적인 희귀종이자 천연기념물인 노랑부리저어새와 원앙 등의 희귀 생명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충격이었다.
희귀동물 위협하는 생태공원
그러나 더 충격적인 사실이 있다. 천안시는 업성저수지를 수변생태공원으로 만들고 있다. 2020년 1월 착공해 이달 개장을 앞두고 있다.
364억 원을 들여 수변산책로 4.1km, 자연관찰교량 280m, 조류관찰원, 야생화정원 등을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또, 409억 원을 투입해 수질개선 사업도 함께 진행 중이다. 업성저수지를 생태공원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 총 773억 원을 투입한 것이다.
▲ 생태를 망치는 생태공원 조성 사업이 한창이다. ⓒ 최병성
하지만 지금 천안시가 업성저수지에 벌이는 개발 사업들은 업성저수지의 수질을 더 악화시키고 소중한 생태를 파괴하는 난개발이 되고 있다. 한국조류보호협회 조사 결과 2019년 업성저수지에 72종 5490마리의 철새들이 찾아왔었으나, 2020년엔 60종 3414마리로 무려 38%나 감소했다.
업성저수지는 원앙의 천국이었다. 지난 2017년 생태계보전협력금 사업으로 원앙 서식지 복원사업을 완료하기도 했다. 그러나 원앙은 565마리에서 158마리로, 흰뺨검둥오리는 1819마리에서 828마리로, 청둥오리는 1295마리에서 838마리로 줄어들었다.
생태공원을 조성한다는데 왜 생태가 파괴되는 결과가 발생한 걸까. 사업 내용을 살펴보면 너무도 당연한 결과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천안시는 저수지 수변을 따라 물 위에 산책로를 설치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노랑부리저어새와 원앙을 비롯해 업성저수지를 찾는 철새 대부분은 물가를 좋아하는 수면성 조류다. 물 속에 잠수해서 물고기를 잡아 먹는 잠수성 조류는 논병아리, 뿔논병아리, 가마우지 등 일부에 불과하다.
▲ 수변을 따라 물 위에 설치된 수상데크. 철새들을 쫓아내는 시설물이 되고 있다. ⓒ 최병성
수면성 조류들은 수심이 얕고 수풀이 우거진 물가를 좋아한다. 그런데 수상데크를 설치하면서 저수지 수변이 파괴됐다. 철새들이 더는 살 수 없는 곳이 된 것이다.
수변을 따라 만들어진 수상데크를 걸어 보았다. 사람 발자국에 놀란 철새들이 수상데크 아래에서 계속 튀어 올라왔다. 수변의 갈대와 나무 그늘에서 숨어 쉬던 원앙들도 산책하는 사람들의 인기척에 놀라 저수지 중앙으로 도망갔다가 사람들이 멀리 사라지면 다시 수변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 천안시가 설치한 수상데크를 따라 걸어가면 물가 수풀에 숨어 있던 철새들이 사람 발자국 소리에 놀라 퍼드덕 거리며 날아올라 도망간다. 철새들의 쉼터를 파괴한 것이다. ⓒ 최병성
업성저수지를 찾은 철새들이 먹이를 찾고 쉬고 둥지를 틀고 새끼들을 키우는 곳은 물가의 수풀이 우거진 곳이다. 그런데 저수지 수변을 따라 수상데크를 설치해 철새들이 살아갈 공간 자체를 파괴했다. 심지어 이런 수변 산책로 공사는 수질악화를 초래하기도 한다.
더 충격적인 사실
수변 산책로보다 더 충격적인 것도 있다. 업성저수지에 39층 고층 아파트 건설 사업이 추진중이었다. 천안시는 '천안 업성, 업성2 도시개발구역 지정 및 개발계획수립에 관한 공람공고 알림'을 통해 4월 8일까지 주민과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 천안시가 업성저수지에 업성지구, 업성2지구라는 아파트 건설 도시계획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 천안시
▲ 천안시가 업성저수지에 추진 중인 아파트 건설 계획 ⓒ 천안시
문제는 업성지구와 업성2지구의 고층아파트가 지어지는 위치다. 업성저수지는 저수지 중앙으로 돌출된 독특한 두 개의 지형이 있는데, 바로 이곳에 도시계획이라는 이름으로 39층 고층 아파트 건설이 추진되는 것이다. 철새들이 살고 있는 수변 가까이에 말이다.
심지어 세계 희귀종인 노랑부리저어새가 먹이 활동을 하는 곳은 업성지구와 업성2지구 사이의 움푹 들어간 습지다. 천안시는 이 습지를 보전한다는 계획이지만 습지 일부를 보전한다고 노랑부리저어새가 계속 살 수 있을지 의문이다.
▲ 업성저수지에서 철새들이 가장 많이 서식하는 습지 양변에 업성지구와 업성2지구라는 39층 고층아파트 건설이 추진 중이다. ⓒ 최병성
노랑부리저어새가 살고 있는 습지 양쪽으로 39층 고층 아파트가 건설된다면, 노랑부리저어새는 더 이상 이곳을 찾지 않을 것이다. 노랑부리저어새와 고라니의 환상적인 어울림 역시 더 이상 볼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소음뿐만 아니라 아파트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 공해로 인해 야생동물들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다.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 오르내리기 위해 기다란 활주로가 필요하듯, 철새들도 그들의 몸집에 맞는 비행거리가 필요하다. 습지 가까이에 39층 고층아파트가 들어선다면 노랑부리저어새의 비행은 불가능해진다. 결국 도심 속 저수지를 찾아오던 희귀 철새들이 더 이상 이곳을 찾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 노랑부리저어새와 원앙과 철새들이 사는 곳은 개발 예정지 사이의 작은 습지다. 수변쪽 빗금친 곳에 공원녹지가 일부 조성되지만 그 면적이 너무 작다. 고층 아파트를 건설한다면 이곳은 더 이상 철새들이 살 수 없는 곳이 되고 말 것이다. ⓒ 최병성
수변 수상데크로 인해 철새들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업성지구, 업성2지구로 계획 중인 39층 고층아파트까지 수변에 들어서면 이곳은 더 이상 철새들이 살 수 없는 곳이 되고 만다. 일부 공원녹지(빗금 친 부분)가 남겨지지만 그 면적이 너무 작다.
철새들만 아니라 사람들도 피해자
수변을 따라 고층아파트가 들어서면 철새들의 피해로만 끝나지 않는다. 수변 가까이 들어서는 아파트의 일부 주민들은 저수지를 바라보는 전망을 누리겠지만, 천안시민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도심 안에 저수지가 있다는 것은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귀한 자원을 소유한 것과 같다. 도심 안 저수지를 소유한 도시들마다 저수지 수변에 나무를 심어 도시 숲을 조성하고 문화광장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안식처를 제공한다.
▲ 일산호수공원 모습이다. 수변에서 충분한 이격거리를 두어 나무를 심어 도시 숲을 만들고, 다양한 문화광장들을 만들어 시민들의 안식처요, 고양시를 대표하는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 최병성
고양시에 있는 일산 호수공원을 살펴보자. 저수지 주변에 많은 나무를 심어 울창한 도시 숲을 만들었다. 크고 작은 문화광장들을 조성했고, 이곳에서 다양한 행사들이 열린다. 도시 숲과 문화 광장 조성을 위해 저수지 우측 수변은 평균 260~270m, 좌측 수변은 평균 약 140~150m의 충분한 이격거리를 두었다. 덕분에 일산 호수공원을 찾은 시민들은 뜨거운 여름에도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호수를 산책할 수 있다.
천안시는 지난 2021년 8월, 시민 의견을 공모하여 업성저수지를 도심 속 호수공원인 '성성물빛호수공원'으로 개명했다. 그러나 일산 호수공원과 달린 천안시 성성물빛호수공원은 도시 숲과 문화광장이 들어 설 공간을 39층 고층 아파트에 내어 주려하고 있다.
▲ 업성저수지 산책로 좌우측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 설 예정이다. 시원한 나무 그늘 사이를 걷는 일산 호수공원과 달린 천안 성성물빛공원은 그늘 한점없는 땡볕 아래 걷는 고통스런 길이 되고 있다. 생태계를 파괴하고, 시민들은 꽉 막힌 시야로 답답한 공원이 될 것이다. ⓒ 최병성
▲ 업성저수지 주변은 이미 고층아파트들이 가득 들어서고 있다. 그런데 남은 공간마저 수변 가까이 고층아파트로 채운다면, 숨막히는 이곳에 누가 찾아 올 것인가? 시민들의 안식처가 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공간이 필요하다. ⓒ 최병성
업성저수지 주변엔 이미 많은 아파트가 들어섰고, 지금도 공사 중이다. 그런데 호수공원의 남아있는 공간마저 고층아파트가 차지한다면, 천안시는 조만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아파트는 한번 들어서고 나면 바꿀 수 없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도시계획은 수정되어야 한다. 다행히도 기회는 아직 있다. 아파트 건설이 완성된 게 아니다. 이제 겨우 아파트 건설을 위한 도시계획이 공람 중에 불과하다. 철새들과 시민들이 공존하는 도심 속 멋진 호수공원으로 거듭날 수 있는 도시계획을 세울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남아 있다.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노랑부리저어새와 원앙과 고라니 등을 동시에 만날 수 있을 만큼 생태계가 살아있는 호수공원은 찾기 어렵다. 천안시가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성성물빛호수공원은 전국에서 가장 이름난 명소가 될 수 있다.
전국에서 이름난 명소가 되는 방법
난개발을 조사해오며 도시계획을 담당하는 공무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개인 사유지라 어쩔 수 없다'는 무기력한 핑계다. 사유지라면 환경을 파괴하고, 시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난개발을 그냥 방치해도 되는 것일까? 이런 것을 해결하라고 행정이 있는 것이다.
아파트가 수변으로부터 좀 더 뒤로 물러설 수 있고, 도시 숲과 문화광장을 만들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성성물빛호수공원은 전국 최고의 호수공원으로 거듭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천안시의 각성으로 철새와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전국 최고의 생태공원이 탄생하길 기대한다.
▲ 업성저수지는 이미 최고의 호수공원이 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철새들이 살아가는 버드나무 바로 뒤에 들어서는 고층아파트를 수변으로 부터 조금 더 뒤로 물러서게만 해주면 된다.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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